엠팍
·1일전
떡볶이를 좀 그냥 사줄걸 그랬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위해서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부지원을 받는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시간을 채울 수가 있었죠.
일주일에 2회정도 가서 애들 공부를 봐주는 것이 그 봉사활동시간을 채우는 방법이었습니다만..
학과연계를 통해 처음 그곳을 갔을 때 공부를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초등학생 중학생이 섞여있는 날도 있고 주말에는 고등학생도 가끔 드나드는 그곳은 사실 보육원이라는 말이 좀 더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르치는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학생들도 저에게서 배움을 기대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같이 갔던 동기와 후배들 몇몇에게 각자 할당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후기도 비슷했습니다. 애들이 말을 전혀 안듣는다.
제가 맡은 학생은 초딩4명, 중딩3명, 고딩1학년생 2명이었습니다. 중고생들은 그래도 말이 통하는 존재였고, 편하게 걔네들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저도 웃기는 대화가 있어서 같이 낄낄대면서 시간을 보냈네요. 근처에 있던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 주말에 피구도 하고 발야구도 시키고 동기네 팀과 내기를 하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우리 이렇게 공부하나도 안해도 돼요? 라고 묻던 고딩여자애는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제 말을 못 들은척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나름대로의 문제라는 것은 초등학생들이었죠. 애들이 악의가 있거나 도넘는 장난을 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곳에 일정시간 머물게 되는 친구들의 경우 가족사가 일반적이지 않다보니, 그에 따른 후유증을 겪는 아이들이라는 것.
저에게는 그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말을해도 아무대답 안하던 남학생 하나와, 뭐만하면 자기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칭얼대던 여학생. 묵언수행하는것 같던 애는 초5학년으로 할머니와 살던 친구였는데 그나마 스포츠를 좋아하는 걸로 어렵게 말을 틀 수 있었습니다.
메날두경기보려고 새벽에 일어난다는 그 친구에게 에프엠이라는 게임을 소개해줬죠. 그게 잘한 일인지는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친구는 이후 저를 잘 따랐더랬죠.
남은건 매일 칭얼대던 초딩2학년 여자아이였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산다더군요. 그 아이와는 집가는 방향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하나있었는데...
이 아이는 거길 지나칠때마다 떡볶이를 사달라고 졸랐더랬죠.
'얘네들이 불쌍해보인다고 함부로 먹을거 사주지 마세요. 그럼 애들은 여기오는 선생님들 모두에게 계속 뭘 사달라고 조릅니다. 어떤선생님이 자기한테 뭘사줬다고 자랑하는 경우도 생기구요. 항상 애정과 관심이 고픈 아이들이라 자기가 뭐라도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 공부방 밖으로 나가셨을때에도 그러니 절대 돈을 주거나 뭘 사주지 마세요. 동정심이 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좋게 돌아오지 않아요'
공부방을 관리하시던 사회복지사님이 당부하던 말씀이셨습니다. 서른초반정도 되셨던 그 선생님의 말이 다소 냉정하다고 느껴졌었지만,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곳을 일년 조금 넘게 다녔는데 적어도 그 선생님은 진실로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선생님이시더군요.
나같은 이의 값싼 동정몇푼이 좋은결과로만 이어지지않는다는 것을 차갑게 상기시켜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찌푸린얼굴로 아무것도 못한다던 초딩2학년 여자아이의 떡볶이좀 사달라는 말에 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안된다. 돈없어서 나도 못사먹어
왜 선생님은 어른인데 돈이없냐는 물음이 항시 따라왔지만, 나도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다소 허망한 답을 내놨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천원짜리 떡볶이 하나 안사주는 냉정한 어른에게도 가벼운 죄책감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가는 동안에는 아이 몸통만한 책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것으로 그만큼의 아쉬움을 덜어냈습니다.
그렇게 한 3개월정도가 지났을때쯤이었네요.
여전히 똑같은 경로로 제가 대신 책가방을 들쳐메고 그 아이와 집으로 가던중 포장마차앞을 지나던 날. 으레 그렇듯 그 아이가 저를 힐끗거리며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떡볶이 사주세요
근데 그 날은 유독 그 친구가 고집을 부리더군요. 맨날 돈없다 안된다 하지말고 오늘만 사달라구요. 절대 복지사샘한테 말 안한다고 하더군요. 초2학생은 아마도 사회복지사샘이 저를 혼낼까봐 제가 떡볶이를 사주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평소와 달랐던 반응이라 저도 마음이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냥 떡볶이 오뎅 2천원어치 사주는게 뭐 대단한거라고 그걸 안사주고있는가.
근데 끝끝내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그 말이 계속 제 머리 꼭지를 잡아끌었습니다. 어설픈 동정심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안좋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
2천원이니까 그냥 사주자가 아니라 그걸로 다른아이들은 그럼 2천원도 우리한테는 쓰기싫어서 안사준거야? 라는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럼 우리를 차별한다로 이어질수도있지않을까라는.
우리야 그냥 몇번 분식사주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사회복지사님 입장에선 아이들 사이의 균열을 끝까지 책임져야하니 복지사님의 말을 들어야하지않는가.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결국 그날도 같은말을 되풀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냥 가자.
터덜터덜 저보다 앞서 걸어가는 그 친구에게 평소와는 다른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다음주에 사주겠다는 말이었네요.
그건 정말 진심이었습니다. 다음주에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한번 여쭤볼 요량이었거든요. 이러이러한데 이제 애들과의 시간도 어느정도 지났고 집가는 길도 같은데 매번 그 아이가 떡볶이 한번만 사달라고 하는거. 한 두번정도는 몰래 사주는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 아이도 분명 비밀로 하겠다라는 다짐을 할거다 라는식으로요.
사람일이 참 공교롭다는 것은 그 다음주의 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 2학년 그 아이가 공부방에 안나왔거든요. 왜 안나왔냐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물었더니..
아이가 다른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네요. 할아버지할머니께서 이제 힘이드시다보니 아이를 다른 일가친척에게 맡겼다는겁니다. 서울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야 있는 곳으로요.
허탈하더군요. 아... 그냥 그날 좀 사줄걸. 이럴줄 알았으면 값싼동정이라는 우려나 그게 불러올 후폭풍따위는 고려도 안했을텐데. 아니, 진작 사회복지사쌤한테 물어볼걸. 참 나란인간도 드럽게 융통성이 없었구나.
그 아이의 기억에 천원짜리 떡볶이 한번을 안사준 냉혈한으로 남는것은 별 상관없습니다. 그냥 제 마음이 정말 찝찝하다는게 오롯한 문제였죠.
가끔 그런거 있지않습니까.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해도 난 상관없다. 다만 오로지 내 마음에 남은 어떤 잔여물이나 찌꺼기로인해 나 자신이 괴롭게 되는 그런 이상한 기분 말입니다.
맨날 눈썹을 찌푸리고 포장마차앞을 지날때마다 오늘도 돈없죠? 라고 묻던 그 초딩여자애의 표정이 참....
이런건 잘 잊히질 않네요
그게 뭐라고 좀 사주지 그랬냐 이 멍청한 새끼야라는 말을.
지난주 동기모임에서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그러게말입니다. 참 미련한 놈이었네요
사소한 아쉬움이 남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