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앙 ·14시간전 ·_딘_

김용범 정책실장이 본 한일 셔틀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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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정책실장의 페북 메시지 입니다.




<나라의 드럼, 안동의 줄불놀이 : 한일 셔틀외교의 새로운 풍경>

2026년 1월 13일, 나라(奈良)의 깊어가는 밤. 한일 정상이 나란히 두 팔을 벌려 드럼 스틱을 들어올렸다. 외교 사진첩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빳빳하게 풀 먹인 셔츠 깃 대신 소매를 걷어붙이고, 엄숙한 표정보다 박자를 맞추는 눈빛이 먼저 오갔다.

악수도, 공동성명도 아닌 드럼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묵직한 현안을 잠시 내려두고 즉흥적으로 박자를 맞춰 본 순간이었다. 그 장면 하나가 길고 복잡한 공동성명보다 더 또렷한 메시지가 됐다.

이것이 지방에서 하는 셔틀외교의 힘이다. 수도였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장면이다. 정장과 장중한 회담장 밖으로 나온 순간, 정상들은 조금 더 가까운 이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형식 자체가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장면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서로를 가장 불편한 이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어느새 두 나라는 서로가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됐다. 정치가 막혀 있을 때도 사람은 건너갔다. 관광이 먼저였고 문화가 먼저였다. 젊은 세대일수록 음식과 거리, 콘텐츠와 일상문화에 거리낌이 없었다.

여론조사와 실제 분위기가 꼭 같지만은 않다는 걸 사람들은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셔틀외교는 바로 그런 변화 위에서 가능해졌다. 다만 흐름을 읽고 그것을 새로운 외교의 형식으로 구체화한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한일관계를 일회성 정상회담이 아니라 자주 만나고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관계로 바꾸려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찾았다. 외교적 관례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일본 지방의 고유한 매력을 살려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일본 측의 ‘지방창생’ 구상에 주목하며 셔틀외교의 무대를 수도에서 지방으로 넓히자고 제안했다. 정상끼리 한 번 만나 사진 찍고 끝나는 외교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일본의 정권 교체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이시바 전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답방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부산. 원래는 안동 방문을 희망했으나 경호와 숙박 문제로 일정이 조정됐다고 한다. 퇴임을 앞둔 총리가 굳이 짐을 챙겨 한국의 지방 도시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한일관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흥미로웠던 건 이시바의 역사관이었다. 평소 한일 교류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그는 정상회담에서 조선통신사를 언급하며, 에도막부가 사실상 국가 대 국가 형태의 외교 관계를 지속했던 거의 유일한 상대가 조선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대 이후의 갈등보다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교류와 공존의 시간을 먼저 보자는 메시지였다. 조선통신사는 단순한 외교 사절단이 아니라 두 나라가 서로를 완전히 낯선 타자가 아닌 이웃으로 인식했던 시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축적된 정상간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 출범한 다카이치 내각과의 셔틀외교 역시 빠르게 궤도에 올랐다. APEC을 계기로 경주에서 만난 두 정상은 다음 회담 장소로 고도 나라현을 택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정권이 바뀌어도 끊기지 않은 동반자 관계를 증명하듯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에는 안동 답방에 나섰다.

안동에서는 나라 방문 때 받았던 환대를 되돌려주듯 국빈방문급 예우가 준비됐다. 두 정상은 재일 한국계 피아니스트 양방언이 참여한 공연과 판소리, 하회마을 선유줄불놀이까지 함께하며 지방의 문화와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정상회담의 배경이 더 이상 회담장과 만찬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장소다. 수도가 아닌 지역, 권력의 중심이 아닌 역사와 생활의 공간에서 두 나라 정상이 반복해서 만난다. 특별한 손님이 아니라 허물없는 이웃처럼 어울리는 장면들이 쌓이며 외교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라와 안동, 이 두 도시는 각자의 나라에서 화려한 현대도시와는 거리가 있다. 개발의 속도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지만, 바로 그 덕분에 오랜 시간의 결이 남았다.

나라에는 백제 문화의 영향이 깊게 남아 있다. 도다이지와 호류지 같은 공간에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교류 흔적이 스며 있다. 나라는 단지 일본의 고도(古都)가 아니라 한일 공동 문명의 기억을 품은 도시이기도 하다.

안동은 한국 유교 문화의 중심지다. 퇴계 이황의 정신이 남아 있는 곳이며 선비문화의 원형이 가장 선명하게 보존된 도시 가운데 하나다. 특히 안동을 중심으로 꽃핀 퇴계학의 흐름은 수백 년 전 전란 속에서도 국경을 넘어 일본 지성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선비 강항(姜沆)은 타국 땅에서 일본 학자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한문’이라는 공통의 문자를 통해 종이 위에 글을 써내려가는 필담(筆談)으로 교감했다. 세이카는 적국의 포로였던 강항에게서 깊은 학문적 충격을 받았고, 이후 그의 영향을 평생 이어갔다.

그 고요한 필담 속에서 안동의 퇴계학이 바다를 건넜다. 방대한 중국 원전보다 주자의 핵심을 명확하게 정리한 퇴계의 사상과 일상 속 자기 통제를 강조한 ‘경(敬)’의 철학은 전란 이후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강항이 남긴 흔적들은 일본 근세 주자학 형성의 토대가 되었고,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은 훗날 에도 막부의 통치 이념을 설계했다. 에도 문치주의의 한 축에 조선 성리학과 퇴계학의 영향이 스며 있었다.

강항은 귀국 후 일본의 정치와 사회를 기록한 《간양록》을 남겼고, 그가 머물렀던 일본 시코쿠의 오즈시는 오늘날까지도 강항을 기리며 그의 고향 영광군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학문과 인간적 신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이들의 만남은 오늘날 한일 양국이 지향해야 할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한일 정상이 나라에서 만나고 안동에서 다시 만난 것은 단순한 장소 선택이 아니다. 근대 이후 헝클어진 양국 관계를 풀기 위해 그 이전의 더 긴 역사로 돌아가보려는 노력이다. 갈등의 기억보다 교류의 기억이 더 오래됐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보자는 외교적 메시지다.

지금의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생각보다 많다.

부산항을 떠난 부품이 요코하마 공장에 닿고, 나고야에서 만들어진 소재가 평택 라인 위에 올려진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까지, 두 나라의 공급망은 이미 그렇게 서로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 경쟁하는 영역도 있지만 상호보완의 가능성 역시 크다. 고령화와 저출생, 지방소멸이라는 사회적 과제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먼저 겪느냐, 조금 늦게 겪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안보 환경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부상, 북핵 문제, 공급망 재편이라는 현실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점점 더 가까운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게 됐다. 역사 문제의 무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동북아 지정학은 두 나라를 계속 같은 방향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물론 아픈 역사의 기억은 오래가고 차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인구 위기도, 지정학적 불안도 닮아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보는 노력은 유효하다. 역사 도시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지방 현장에서 현재를 이야기하고, 경제와 안보에서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것 모두 자주 만나고 가볍게 오가는 셔틀외교라야 가능한 방식이다.

다음엔 또 어느 지방 어느 골목에서 정상간 웃음소리가 들려올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음 셔틀이 자기 도시에서 펼쳐지길, 한일의 역사 도시들은 벌써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에는 서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래된 지역의 시간들이 남아 있다. 백제 문명의 숨결이 이어지는 공주와 부여, 한옥과 음식, 골목과 일상이 살아 있는 전주, 이순신의 바다를 품은 여수와 통영.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고대 백제 학자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상대포와 근대 개항의 역사를 함께 품은 목포도 있다.

일본 역시 각 번(藩)의 역사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지방의 나라다. 조선과 일본, 그리고 바깥세계를 이어온 나가사키, 오래전 바닷길로 경주와 개경을 잇던 후쿠오카, 속도보다 시간의 결을 지켜온 가나자와, 북방의 긴 겨울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은 아오모리, 그리고 오랜 온천 문화와 전통 료칸의 풍경을 간직한 벳푸까지. 일본의 지방은 가보면 정말 각각 다른 나라 같다.

셔틀외교가 이런 특색 있는 도시들을 오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상회담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번 안동 줄불놀이의 대박처럼 회담장 밖 골목과 시장, 항구와 축제가 곧 의제가 되는 외교. 그렇게 보면 외교라는 것도 결국 사람 사는 풍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일인지 모른다.

나라의 드럼 소리와 안동의 줄불놀이 사이에서, 한일 셔틀외교도 그렇게 조금씩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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